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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망치
@mangchi_httyd

*드래곤 길들이기 1 직전 시점

 

 

  아스트리드는 언제부터 히컵이 대장간에 유배당했는지 기억하지는 못했다. 크게 관심은 없었다. 히컵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아주 어릴 적이다. 그날은 고함과 폭발음이 가득한 밤이었다. 위대한 스토이크는 전투를 지휘하느라 자리를 비워 고버에게 아들을 떠맡겼고, 어린 족장 후계는 고버가 잠깐 그롱클용 그물을 가지러 돌아선 사이를 틈타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한편, 아스트리드는 엄마에게 자신도 싸울 수 있다며 고집을 부리다가 홀로 집에 갇히고 말았다. 용맹한 꼬마 바이킹답게 머리를 바짝 땋은 소녀는 문간에 서서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을 열심히 구경하다가 왜소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장난감 목검을 꼭 쥐고 바들거리는 겁쟁이. 이내 몬스트러스 나이트메어가 뿜은 불이 코앞까지 옮겨붙자,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뒤늦게 고버의 의수가 검댕을 뒤집어쓴 그를 낚아챘다.

 

  툭하면 부서지고 깨지고 무언가 스리슬쩍 없어지는 작은 섬마을. 아스트리드는 불을 끈답시고 적습 때마다 몰려다니는 방범대 아이들 중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놈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오합지졸에서도 제외된 소년의 평판은 오죽할까.

 

  아스트리드는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서서 도끼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히컵을 감시했다. 고버가 부재중인 대장간에는 그의 말라깽이 견습생뿐이었다. 전투에 나가는 일이 없더라도 헐거운 도끼를 용납할 수 없는 어린 전사는 결국 미덥지 않은 얼굴로 무기를 건네준 것이다.

  "아스트리드! 하하, 오랜만이네. 그래서…. 어디가 문제야?"

  "도끼가 좀 무뎌진 것 같아서."

  "날이 무뎌졌다는 말이지?"

  사람 눈은 허둥거리며 3초 이상 마주치지 못하는 히컵이 신중하게 도끼날 주변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는 모습이 의외였다. 어쩌면 그가 두른 낡았지만 단정한 갈색 작업용 앞치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단 둘이서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것도 얼마 만인지.

  "목표물에 깨끗하게 박히는 느낌이 아니라 덜컥거려. 좀 둔해진 느낌이야."

  "아하. 그럼 여기 이 웨지를, 이렇게..."

  공구를 들고 낑낑거리던 히컵은 불길한 뚝 소리와 함께 날과 핸들이 덜렁 분리되자 눈에 띄게 당황했다. 대장장이 일에 문외한인 아스트리드조차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아스트리드는 한숨을 쉬고 벽에 걸린 다른 도끼를 낚아챘다. 내일, 아니 모레까지 꼭 고쳐 주겠다는 히컵의 말을 반대편 귀로 흘려보내며.

 

 

 

 

  오늘의 훈련은 공격으로 이어지는 공중제비 연습과 도끼 던지기 30회. 늘 쓰던 무기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새 도끼가 대강 손에 익었을 무렵에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거였는데."

  발끝에 걸리는 족족 돌멩이를 걷어차며 산길을 내려가던 아스트리드가 중얼거렸다. 뒷산 중턱의 훈련장에서 마을로 돌아가는 시간은 늘 고요하고 평화로웠는데, 오늘은 유독 잡다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개울 위로 머리를 내민 바위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 양치류가 종아리 위까지 우거진 곳을 지나면 아스트리드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있었다. 울창한 침엽수 사이를 비집고 지는 해가 잠깐 지면을 따스하게 쓰다듬는 곳. 부드러운 이끼가 덮인 바위 위에 앉아 무기를 손질하고 땅거미가 완전히 내려앉기 전에 내려가야지. 시무룩했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가 불청객을 보고 사라졌다.

 

  "도끼 고쳐 준다더니."

  작은 체구의 소년이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잠들어 있었다. 새근거리며 자는 얼굴이 무척이나 천진했다. 배 위에는 잠들기 직전까지 뭔가를 끄적인 듯 펼쳐서 뒤집어 놓은 노트가 놓여 있었다. 늘 품에 고이고이 끼고 다니는 수첩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불쑥 궁금해진다.

  펼쳐 놓은 사람이 잘못한 거야. 페이지를 펼치자, 사이에 끼워 둔 연필이 떨어져 바닥에 데구루루 굴렀다. 스케치를 훑어보던 눈이 조금 커졌다. 익숙한 도끼의 그림 옆에 투박한 글씨로 남긴 메모가 여러 줄 붙어 있었다. 핸들에 감을 가죽의 종류, 날을 얼마나 갈아낼 것인지, 교체할 금속 볼트의 크기까지 자세히 적혀 있다. 여러 번 지워서 까맣게 번진 곳도 있었다. 페이지를 앞으로 넘기던 아스트리드는 움찔했다. 동그란 얼굴에 길게 내린 옆머리와 이마를 가로지르는 징 박힌 가죽끈. 얼굴을 살짝 덮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은 공들여 속눈썹을 묘사해 꽤 예쁘장했다. 풋풋한 마음이 묻어나는 어설픈 그림.

 

  이번만 봐준다. 군데군데 하얗게 핀 들꽃 군락에서 한 송이를 꺾어 페이지 사이에 끼우고 노트를 돌려놓곤, 잠든 히컵을 지나쳐 하산했다.

 

  얼마 있지 않아 단잠에서 깬 히컵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얇고 섬세한 갈색 머리칼이 저녁 바람에 살랑거린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지. 노트를 집어 들자, 종잇장에 눌린 꽃 한 송이가 손으로 떨어졌다.

 

  "이런 걸 끼워뒀던가...?"

 

  데이지.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달큰한 향기와 무른 풀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봄이었다.

​드래곤 길들이기 팬 창작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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